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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1
김영기    2007-03-15 00:17:36   
스티브 잡스의 스텐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문!  

애플 컴퓨터의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텐포드 대학 졸업식에 한 연설

  저는 대학졸업식에 참석한 적이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 생모는 젊은 대학원생인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저의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 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자를 원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물론이죠’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분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대학까지 꼭 보내기고 약속하고서야 입양을 허락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7 년 후에 저는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곳, 스텐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부모님이 힘들게 모와 두었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 갔습니다.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제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대학교육이 제게 어떤 도움이 될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도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돌아보면 제가 인생에서 내린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 두고 관심 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서 지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거실에서 잠을 잤고, 빈 콜라병을 모아 병당 5센트를 받고 넘겨 먹을 것을 샀고 한 끼 식사를 위해 10 킬로를 걸어서 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되었습니다.
예를 든다면 당시 라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자퇴를 하고 나니 재미없는 필수과목대신 듣고 싶었던 강의를 맘대로 청강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청강했던 서체과목은 저를 매료했지만 이것이 제 인생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제 인생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10년 후에 우리가 첫 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것들은 고스란히 빛일 발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 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앗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두 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저는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일찍 찾았습니다. 나이 20살에 부모님의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를 시작했습니다.  10년 만에 애플은 4000명 이상의 직원을 가진 20억 달러 짜리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서른 살 때의 일입니다. 스스로 창업한 회사에서 어떻게 해고를 당하느냐구요?
애플의 규모가 점점 커감에 따라 동업자를 영입했는데 처음 1년은 그런대로 잘 굴러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견해가 엇갈리기 시작하였고 결국에는 불화로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이사진은 그쪽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저는 인생의 초점을 잃어 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선배들에게 용서를 구하려했습니다.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고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5년간 저는 넥스트와 픽이라는 회사를 차렸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 버렸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에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제작사가 되었습니다.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 중 어떤 한 가지도 겪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 봅니다.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뒤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 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 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고 해도 주저 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 앉지 마세요.

   세 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세 때 이런 경구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질에 서 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후 50살이 되도록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오라는 대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왜냐구요?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죽음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 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췌장암인데 의사들은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 줄 수 있는 것을 단 몇 달 안에 해치워야 된단 말이었고 임종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뜻이었고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고 싶어 하지는 않죠.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 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에게 그 자리를 물러주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제가 어렸을 때 지구백과라는 책이 있었는데 우리세대의 바이블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든이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지요.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그 책의 뒷 표지에는 이른 아침의 시골길 사진아래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즉 늘 배고픈 채로 어리석은 채로 남기를 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늘 배고픈 채로 늘 어리석은 채로 저는 제자신이 그러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께 말하고 싶습니다. 늘 배고픈 채로 늘 어리석은 채로 남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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